먹으러 왔는데 먹을 수 없는

흰 바탕에 놓인 녹두죽 한 그릇과 나무 숟가락·젓가락

[유료 스톡] 클립아트코리아 구매 이미지

한국 여행 계획표를 보면 절반은 음식입니다.

떡볶이, 삼겹살, 순대국, 마라탕, 치맥.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가 사실상 동선을 결정하죠. 저장해 둔 지도에 핀이 스무 개쯤 꽂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시술을 마치고 나면 목록의 대부분이 지워집니다.

어떤 음식을 못 먹는 걸까요?

맵고 뜨거운 음식이 먼저 빠져요.

매운맛은 통증 수용체를 자극해 체온과 혈류를 올립니다. 뜨거운 음식은 그 자체로 열이고요. 시술 후에 열을 피하라는 안내를 받으셨다면, 그 안내는 음식에도 적용됩니다. 입 주변이나 구강 내 시술이라면 더 직접적이죠.

술은 혈관을 확장시킵니다. 붓기와 붉은기에 그대로 영향을 주고, 진통제나 항생제를 복용 중이라면 별도의 문제가 생기죠. 회복기 안내문에서 술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짠 음식도 자주 언급되는데요. 나트륨이 수분을 붙잡기 때문에 부기를 오래 남길 수 있어요. 한국 음식은 대체로 간이 있는 편이라 이 항목에서 은근히 넓게 걸립니다.

씹는 힘이 드는 음식도 마찬가지고요. 얼굴 쪽 시술이라면 특히 그렇습니다. 질긴 고기, 딱딱한 견과류, 입을 크게 벌려야 하는 버거 같은 것들이죠. 지우고 나면 목록에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여행의 큰 부분이 그냥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국에는 아플 때 먹는 음식이 따로 있어요

여기서 조금 다르게 볼 여지가 생겨요.

한국에는 회복하는 사람을 위한 음식이 하나의 문화로 존재합니다. 아프면 죽을 먹고, 기력이 없으면 삼계탕을 먹고, 속이 부대끼면 콩나물국을 먹어요.

죽 전문점이 도시마다 있다는 건 사실 특이한 일이에요. 전복죽, 호박죽, 야채죽, 소고기죽. 아침 일찍 문을 열고, 혼자 먹어도 어색하지 않고, 온도를 조절해 달라고도 할 수 있어요. 건강검진을 마치고 나오면 죽 한 그릇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순두부도 좋습니다. 매운 양념 없이 주문할 수 있고, 부드럽고, 단백질이 있어요. 계란찜, 잣죽, 연근조림, 두부조림 같은 것들도 자극이 거의 없습니다.

사찰음식 역시 이 시기와 잘 맞아요. 오신채를 쓰지 않아 향과 자극이 약하고, 조리법이 대체로 순합니다. 서울과 강원 여러 곳에 사찰음식 전문점이 있어요. 강원 쪽이라면 감자옹심이와 메밀 음식도 있어요. 막국수는 차갑게 나오고 간도 세지 않습니다. 초당순두부는 간수 대신 바닷물로 응고시킨 것이라 더 부드럽고요. 황태해장국은 뜨겁긴 하지만 맵지 않아서, 온도만 식히면 좋은 선택지가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돌아옵니다

제한이 영원한 게 아니라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개는 순서가 있습니다. 부드럽고 미지근한 것부터 시작해 상온의 음식, 따뜻한 음식, 그다음 향신료가 있는 것들로 넘어가요. 술이 가장 늦게 돌아오는 편이죠.

다만 그 순서와 시점은 시술마다 다릅니다. 인터넷에서 본 기간을 적용하지 마시고, 진료받은 곳에 물어보세요. “언제부터 먹어도 되나요”보다 “매운 건 언제부터, 술은 언제부터”처럼 나눠서 물어보시는 게 훨씬 좋아요.

여행 일정이 있다면 그것도 말씀하시고요. “일주일 뒤에 친구랑 삼겹살을 먹기로 했는데 괜찮을까요?”라고 물으면 답이 구체적으로 나올 거예요.

다음에 오면 되니까요

물론 아쉬울 겁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그 가게, 친구가 꼭 가보라고 한 그 골목, 몇 달 전부터 저장해 둔 지도. 다음 여행으로 미루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다만 이번 여행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정리가 됩니다. 지금은 회복하러 온 거고, 그건 몇 주면 끝나요. 그다음부터는 아무 제한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며칠 동안 먹게 되는 것들도 나쁘지 않아요. 죽 한 그릇을 천천히 먹으면서 창밖을 보는 아침이, 나중에 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을 거예요. 붐비는 골목에서 줄을 서서 먹은 것보다요.

먹으러 오는 여행은 다음에도 올 수 있습니다. 회복은 지금밖에 못 해요.

리커버리 루트는 온전한 회복을 위한 쉼을 늘 고민합니다. 가장 평온한 자리를 찾아, 걷는 거리와 그늘과 앉을 곳을 확인해 적어둡니다.

본 기사는 여행 정보이며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시술·회복과 관련한 판단은 진료받으신 의료기관에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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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비수기에 오세요